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구야 공주 이야기 (문단 편집) == 기타 == {{{#!folding 스즈키 토시오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밝힌 가구야 히메 제작 후일담 ▼ ||[[타카하타 이사오]]: 그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만, 8년간 계속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만 전념했던 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토에이 동화]]에 다니던 시절, 우치다 도무 감독님께서 「다케토리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기획서를 쓴 적이 있지요. 그런데 8년 전에 스즈키 씨 사무실에 갔을 때, 불현듯 그 기획서가 떠올랐습니다. “「다케토리 이야기」에서는 가구야 공주가 왜 달에서 왔는지 쓰여 있지 않네.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겠나?” 하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만 해도 내가 감독을 하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어요. 좋은 기획이니까 누가 만들어도 재미있을 테고, 나는 왕조(王朝)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않고요. [[스즈키 토시오]]: 그때 다카하타 씨가 이렇게 말했지요. “「다케토리 이야기」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니까 누군가가 제대로 영화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라고요. 그래서 “다카하타 씨가 그 누군가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더니, 알겠다고 하시지 않더군요. 그저 한숨처럼 “하아……” 했을 뿐이죠(웃음). 막상 제작에 들어가자 다카하타 씨는 본인이 신뢰하는 소수정예만으로 진행하는, 지브리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방법을 취했습니다. 조금씩이라도 만들어나가면 어느 순간에 완성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니시무라 요시아키 프로듀서가 그러더군요. 이대로 가면 2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요. 결국 「[[바람이 분다(애니메이션)|바람이 분다]]」와 같은 날 개봉하려고 했던 계획은 무산되고 11월에 개봉하게 되었지요 (웃음). [[미야자키 하야오]]: 소수정예라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원하는 소수정예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카하타: 지금까지 지브리를 지탱해온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게는 「다케토리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면 되는 게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진행’이라는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더군요. 회사 측에서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라고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쪽으로선 대답할 도리가 없었지요. 미야자키: 파쿠상은 항상 그랬잖습니까?(웃음). 매주 방송하는 TV 시리즈를 같이 만들었을 때도 파쿠 씨는 프로듀서를 붙잡고 “이 작품을 TV 시리즈로 만드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아나? 그 이유는……”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했지요. 이미 제작이 시작되어 현장은 움직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다카하타: 그 무렵부터 미야 씨는 항상 앞일을 생각했지요.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을 하면 안 돼”라고 하면서요. 나는 “아무리 앞일을 생각해도, 될 대로 되는 법이지”라는 타입이고요. 그런 점이 크게 달랐습니다. 스즈키 : 미야 씨는 왜 그렇게 앞일까지 생각하시나요?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은 공동작업이니까요. 우리가 시간을 많이 들이면 다음 파트를 담당할 사람이 곤란하잖습니까? (후략)||}}} 이 영화에서 가구야는 어린 시절 잠깐을 제외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불행한 삶을 보낸다. 원작과는 다르게 각색된 부분이 죄다 공주가 불행해지는 요인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원작에 비해 암울하기 짝이없는데, 제비의 자패를 얻으려다 허리가 부러졌던 원작 귀족은 허리가 부러져 사망했으며, 원작에선 천황의 청혼을 거절한 뒤에도 그냥 친구로 남은 뒤, 자신이 달로 돌아갈 때가 되자 돌아갔지만, 여기선 천황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난 뒤 절실하게 '''더이상 지구에서 살고싶지 않다고 빌었다.''' 할아버지 또한 원작에 비해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변한건 덤] 특유의 색채, 그리고 어느정도 데포르메된 작화와 더불어, [[헤이안 시대]] 각 계층의 생활상을 잘 그려내었다.[* 머리를 빗어 올려 장식하고, [[쥬니히토에|열두겹 홀옷 위에 치마를 두르는]] 당대 여성 [[관례|성년례(成年禮)]]가 그 예다. 또한 작중에 등장하는 조개 껍데기는 가이아와세(かいあわせ)라는 장난감의 일종으로 조개 껍데기 안에 그림을 그려 짝을 찾는 식의 놀이로 당대의 귀족들이 즐기던 놀이였다.][* 하류층 같은 경우에는, 공주 가족이 [[교토|도성]]으로 떠나기 전인 '''초반부의 시골 마을''', 성년례때 흥을 돋구고 화대를 받아가는 '''광대 무리들'''과 도성 내 '''평민들'''이 있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일본 트위터리안 사이에서는 천황의 긴 턱이 화제가 되어 패러디 이미지가 잠시 유행했다. 한국에서 과거 [[히메]]를 전부 [[공주]](=왕녀)로 번역했던 업계관행에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은 작품이다. 분명 황족은 아닌 가구야가 계속 공주라고 불리는 상황이 연출된데다가, 가구야가 "어차피 진짜 공주도 아니잖아?"라는 말을 엿듣고 충격 받는 장면은 관련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울수 있다. 원래부터 카구야 공주로 유명한 캐릭터라 바꾸기 힘들긴 했겠지만... 나무꾼 할아버지를 맡은 치이 타케오와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가 이 작품을 끝으로 각각 2012년, 2018년 별세하면서 유작이 되었다. 공주가 저지른 죄와 벌이라고 적혀있는데 사실 극중에서 공주가 저지른 죄와 벌이 정확히 무엇인지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 타케토리모노가타리에서도 공주는 잘못을 해서 지구에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굳이 해석을 해보자면 '''천인의 신분에도 지구인의 삶을 동경해 지구로 내려온 죄''' 와 이 때문에 얻은 불행, 그리고 지구에서 가졌던 모든 추억조차 모두 잊어버린 것이 바로 벌이 아닐까 추측된다. 작품 전체에 걸쳐 [[나무를 심은 사람]]의 오마주가 많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2013년 나무를 심은 사람의 감독 프레데릭 백이 위독하단 소식을 듣고 이 작품의 영상을 들고 찾아가 프레데릭 백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https://web.archive.org/web/20140201150842/https://www.yomiuri.co.jp/entertainment/ghibli/gnews/20140114-OYT8T00832.htm?from=os2|#]] 사망해서 유작이 됐지만 타카하타 이사오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고 한다. 후속작은 [[헤이케모노가타리]]였으며 [[타나베 오사무]]와 [[하시모토 신지(애니메이터)|하시모토 신지]] 두 사람을 메인 애니메이터로 기용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니시무라 프로듀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제 다시는 안 한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https://type-r.hatenablog.com/entry/20140118/p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